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에서 우리는 같은 내용과 장면을 2번 마주한다.

얼핏 보면 판박이처럼 똑같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두 번의 똑같은 진행 과정과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달라지는 말투와 표정 행동, 그로인해 상대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틀린그림찾기처럼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던 장면과 대사들을 찾아보는 게 이 영화의 묘미이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간밤에 AB가 술을 마시던 도중 크게 싸웠다는데 결국 해장국까지 먹고 아침에 인사하며 헤어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싸우다가 그들이 화해해서 해장국까지 먹었는지는 정작 본인들도 알지 못한다. C라는 사람이 두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도무지 둘 사이에 화해의 시작을 찾기 어렵다. 대개는 이런 식으로 결론 낼 것이다.

그냥 어쩌다 보니 풀렸어...”

 

기억이란 것은 참으로 믿을 것이 못 된다. 영화에서처럼 과장 또는 확대되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편집되고, 첨삭된다. 기억이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말투, 표정, 감정과 태도들로 유추해야 하지만 결국 기억이란 것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그것이 기억의 당연한 모습이며, 정확한 사실로 남겨진다면 더 이상 기억이라는 단어 대신 기록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야 한다.

 

한 유부남 감독이 업무차 들른 수원행 하룻밤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세세한 감정과 말투, 표현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기억에서 확실한 것은 그들은 행궁에서 만났고, 커피를 마셨으며, 화방에 갔고, 회에 소주를 마셨으며, 친한 언니네 가서 진탕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이 팩트는 변함이 없다. 기억의 소소한 편린이 빠지고 나면 이렇게 큰 줄기의 진실만 남는다. 그러니 극 중 인물이 말하는 화려한 언어적 수사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일까? 옷을 벗었던, 안 벗었던,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던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변화나 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 한다. 지난날의 소소함은 현재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나도 작고 소소한 감정과 관계들로 인생의 전부를 허비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남들에게 우리를 감춰야 하고, 또 잘 보여야 하고, 때로 나 자신을 속이기도 해야 한다. 모래처럼 모든 유치하고 우습고 초라한 기억들을 모조리 가지고 살아간다면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익사할지 모른다.

지금은 맞고 그때가 틀린 이유는 그때가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지금을 살고 있는 나의 필요에 의해 과거의 그때를 맞춰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과거는 현재의 나를 만든 조각이 아니라

현재의 나에게 필요한 구성 요소로 소모된다.

 


홍상수는 기억의 조작과 왜곡에 대한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곧잘 사용하고는 했다.

찌질하고, 초라해 보이고, 한심하기까지한 캐릭터들을 통해 사랑이라는 통속성에 담아낸 소재지만 주제의식만큼은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인간 본질의 내면과 습성을 들여다보는 놀라운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훌륭한 배우들을 마치 노메이크업으로 카메라 앞에 세운 것처럼 홍상수 감독은 날 것의 느낌의 영화를 고집하는데,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 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은 관객들에게는 정말이지 한없이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일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 또는 우리 주위의 누군가를 몹시도 닮은 캐릭터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거치고 나면 배우로서 거듭나기 마련이다. 배우병 빼는데는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 따라올 감독이 없다.

김민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이번에 2017년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농익은 연기를 보고 있자니 모델 출신이라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김민희와 홍상수는 사생활로도 지금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모든 결과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앞으로 두 분 모두 소망하는 것에 용기를 냈다면 감내하는 것에도 용기를 잃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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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이 아빠, 지동 엄마, 아들 빵떡이의 가족 블로그입니다. 영화, 쇼핑, 맛집, 뉴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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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tryyourbest5.tistory.com BlogIcon Richard 2017.02.20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어쩌다 보니 풀렸어^^ 대사가 너무 좋네요 ㅎ
    가끔 술한잔이 사람간의 관계가 얼마나 쉬울 수 있는지 알게 해주는 것 같네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은게 인간관계 인듯합니다 ㅎ
    좋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 Favicon of http://ss2.kr BlogIcon 썅이 2017.02.20 1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 맞는 말씀이예요. 어렵게 풀면 참 어렵고 쉽게 풀면 문제도 아닌게 인간관계 아닌가 생각되요. 즐거운 하루 되시고 또 뵈요^^

 

영화 '날 보러와요'는 실화를 근거에 둔 영화라지만 어느 실화에서 얼마나 근거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건 실화를 근거로 두었음에도 터무니없는 개연성과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보다도 훨씬 흥미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1. 한동식은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주인공인 나남수 PD는 우연히 조작논란에 휩싸여 방송계에서 입지가 위험해지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1년 후 지인을 통해 사이드코너 고스트로드연출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수첩 하나를 우연히 조연출에게 받아본 나남수 PD는 본인이 맡게 된 공포 프로그램 고스트 로드와 무관하게 왕년의 자신이 사회자로 잘 나갔던 프로그램 추적24를 위해 경찰서장 강병주 타살 사건을 파헤칩니다.

 

촬영을 하러 촬영장소로 갔는데 우연히 1년 전 화재사고의 생존자가 그곳에 있었고, 그를 통해 수첩의 궁금증을 풀어나갑니다. 그토록 큰 화상을 입고도 1년이나 그 상태로 거기 있었던 걸까? 아님 죽을 거 같은 몸을 이끌고 그 날 우연히 거기 갔던 것일까? 게다가 이 남자는 영화후반에 갑자기 병원에서 실종되기까지 합니다. 그 몸을 이끌고 사라진 남자.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무엇을 감추는 걸까요?

 

 

 

2. 반전인가 사기인가.

 

강수아의 모든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본인 말에 의하면 정신병원에 들어간 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친어머니였죠. 이렇게 지금껏 강수아의 거짓말이었다고 결론 내버리면 도대체 그 거짓말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가 모호해집니다.

 

자신을 성추행했다던 아버지도 거짓말일까요? 그는 촉망받던 경찰청장감이었습니다.자살했다는 말이 거짓말이듯 자신이 죽였다는 뉘앙스의 말도 거짓말일지 모릅니다.

 

강수아의 모든 말이 거짓말이라면 비밀통로를 알고 있다며 유사성행위를 요구한 옆 칸 남자의 행동도, 장난치다가 불을 낸 정신질환자의 행동도 모두 거짓일 수 있습니다. 불은 과연 누가 냈던 걸까요?

 

한동식이 강수아과 연락해서 만난 당일 병원에 불이 납니다. 사고인지 계획인지 우린 알 길이 없습니다. 그녀는 라이어니까요. 영화는 양치기 소년처럼 지금껏 보여줬던 진실을 한꺼번에 거짓의 늪으로 가라앉혀 버립니다. 그로 인해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애매해지는, 즉 그래서 주는 정보만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내용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통의 다른 영화들에서는 한사람이 증언하고 또 다른 사람의 증언을 통해 진실을 유추해가며 사실에 접근해갑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황당하게도 강수아의 증언뿐입니다. 게다가 강수아는 자신을 거짓말장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어떠한 사실도 유추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사건의 시점은?

 

본의 아니게 정신병원에 갇히고 온갖 고통 속에서 탈출하게 된 것은 결국 정신병자의 단순한 불장난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연히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강병주의 살해도 우연한 것이었던걸까요? 강수아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수첩은 1년 전에 나남수 PD 앞으로 보내진 건데 1년 전 강수아는 수첩을 기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가 사라져 어머니를 찾던 중이고, 찾던 어머니는 한동식의 연락으로 병원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불이 났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대체 왜?) 집에 가 아버지를 죽이고 바로 감옥에 갑니다.

 

즉 한동식의 연락을 받고 어머니 존재를 확인하고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가는 게 하루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대체 언제 썼을까요? 어머니 존재 확인도 전에 썼던 걸까요? 아니면 감옥에서 간 후에 썼던 걸까요? 감옥에서는 위험한 볼펜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볼펜을 받아써서 보냈다고 해도 1년 전의 추적 24PD였던 나남수는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머니 존재 확인 전에 썼다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겠죠. 미리 썼고 한동식을 만나는 날, 또는 그 직전에 나남수 PD에게 보냈습니다.(물론 전화도 했었죠. 근데 PD가 관심 갖질 않았죠) 그렇다면 어머니 존재 확 전에 써서 보냈다는 것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해석해봤습니다.

 

어머니는 약에 취해 항상 먼저 잠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의붓아버지는 강수아의 침실로 들어오고는 했습니다. 강수아와 의붓아버지는 각별했습니다.

 

친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수감시킨 건 강수아와 의붓아버지의 소행이라고 볼 수 있죠.

 

또는 강수아 혼자의 독단적 범행일 수도 있습니다. 의붓아버지 역시 부검결과 약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대사가 단서입니다.

 

아무튼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지내다가 한동식한테 어머니를 구하러 오라는 전화가 옵니다. 어머니가 자신의 범행을 외부에 말하는 게 두려워 어머니를 만나러 정신병원으로 가고 때마침 불이 나서 다 죽습니다.(불도 누가 냈는지 모르죠. (오직 강수아의 진술 뿐이라)

 

병원에서 도주한 강수아는 아버지를 쏴죽입니다. 공범을 제거한 셈입니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아버지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에 자살했을 수도 있습니다어찌됐든 강수아는 자신을 성추행한 아버지로 만듭니다. 이미 보냈던, 혹은 감옥에서 쓴 불에 태운 수첩을 받은 나남수는 그 수첩을 증거로 그녀를 무죄로 만듭니다.

 

한동식은 불을 지르고 어머니를 강제 입원시킨 강수아가 본인을 찾아올지 몰라 화상치료 중 도망칩니다. 수첩에 그려진 날개문신 그림을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한동식을 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쓸데없는 떡밥은 영화 속에 무수히 많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강수아가 라이어라는 전제 때문이지요. 강수아가 거짓이기에 그녀의 주장 전체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그저 강수아의 마지막 고백을 진실로 받아들여야겠죠. 그게 감독의 요구라면 그렇게 이해해야겠죠.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왜 굳이 그 불구덩이 속에서 병원복까지 갈아입고 도망쳐나와야했을까?  

 

장원장의 대사가 기억납니다.

 

여긴(정신병원은) 미친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예요. 마음을 치료하러 오는 곳입니다.”

 

강수아는 정말 마음이 망가진 여자는 아니었을까요? 어릴 때 죽은 아버지를 자신을 구해주러 온 남자로 상상한 것을 아버지를 좋아하는 여자로 생각하는 건 과장일까요? 그저 새아빠를 원망하기에 그 반대편에 친아빠를 배치한 것일까요?

 

어쨌든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호화로운 저택 앞에서 나PD의 차에서 내린 후 승리의 미소를 짓습니다. 긴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난 안도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무엇을 계획했건 그 계획이 성공적이라는 승리의 미소 같습니다. 반전이라고 말해주는 대사는 되려 더 혼란스럽게만 만들고 맙니다.

 

영화의 엉성한 시나리오는 주인공들의 연기에 힘을 실어주지 못했고, 이상하고 기이한 실화라는 근거의 내용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예원은 어느 새 코믹연기가 익숙해져서인지 이런 연기는 낯설기만 하네요.

 

 

영화와는 상관없이 정말 2015년 이 당시만 해도 강제입원제도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속이나 재산을 노리는 사람들에 의해 힘없는 노약자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은 이 제도에 악용되어 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강제입원 조건은 두 명의 보호자가 동의하거나, 보호자 한명, 의사 한명이 24시간 관찰 후 동의할 시에는 강제입원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퇴원도 보호자 동의가 있지 않는 한 할 수 없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16,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증진법)은 지난 529일 정신보건법을 전부 개정했습니다.

 

정신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는 사태를 막는 등 입원대상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취지입니다. 정신건강증진법에 따르면 보호의무자 2명의 신청과 정신 전문의 1명의 판단 만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기간은 2주 밖에 안됩니다. 입원 기간을 2주보다 더 연장하려면 국공립 정신의료기관 등의 전문의 1명을 포함한 정신과 의료인 2명 이상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신과 의사, 법조계 인사, 사회복지사, 가족, 인권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입원 적합성 심사 위원회가 구성돼 입원의 적절성에 대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 법의 실효성은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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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체는 비록 아쉬운 결과를 보여주었지만 이 영화가 이런 개정법을 조금이나마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법이 아무리 완벽해도 지키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밝고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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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그 말처럼(아직도 미신같지만)

나는 늘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지금껏 내가 바래온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도 내 꿈을 뚜렷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그래도 나는 계속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바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은 영화 속 대사처럼 더 무서우니까.

 

 

 

 

나의 젊음은 늘 이런 식이었다.

모든 것을 갖고 싶었지만 단 하나도 제대로 거머쥔 적 없었다.

영화 속 경주 장면처럼 남이 뛰면 나도 모르게 따라 뛰는 레이스 같은 삶의 연속일 뿐이다.

 

 

지치면 걸었고, 너무 뒤쳐지면 뛰었다.

그런 나의 애매한 상태는 경보를 닮았다.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무언가 하고는 있지만 왜 하는지 모를 답답한 몸부림.

 

 

이런 나의 발악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은 한결 같다.

어느 누가 봐도 똑같은 진단. 노력과 열정 부족.

남들이 하면 노력, 내가 하면 미련.

꿈을 가지라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지만 정작 주변에서 꿈을 이뤘다는 어른은 찾아볼 수가 없다.

 

 

넘어져 발에서 피가 나고 있어도, 그만 뛸건지부터 묻는다.

날 위한 걱정일까, 당신들 기대를 위한 걱정일까? 

괜찮냐는 안부 한마디 그리워질때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영화 속 장면처럼 꿈은 그저 내 머리 위를 나는 비행기와 같다.

딱 저만큼이다. 꿈과 나의 거리는.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1등,

훗날에 적당히 살기위해 오늘을 열심히 사는 1등.

폼생폼사로 미래를 꿈꾸는 오늘의 1등.

 

 

1등이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 1등이라는 목표로 달리고 있지만,

달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영화 속 꿈 장면처럼 1등을 해도 뛰어야 하는 이유를 모른다면 끝없이 뛰어야 한다. 

 

 

국가대표가 되지 못해도 국가대표 팀닥터가 되고,

마라토너가 되지 못해도 청소업체 사장이 되고,

경보왕이 되지 못해도 걷기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이 결코 실패한 삶은 아니다.

 

 

우린 잊고 살아가고 있다.

차가 아니어도, 비행기가 아니어도, 우린 걸을 수 있다.

1등이 아니어도, 최고가 아니어도, 우린 행복할 수 있다. 아니 행복해야 한다.

 

 

언제 도착해도 도착하듯이 무엇이 되더라도 우리는 된다.

그러니 우리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이제는 좀 걸어도 되지 않을까.

 

 

ㄱㄱㄱㄱㄱㄱ꼭, 달려야만 하나요?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숨차지? 그냥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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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역사를 모티브로 한 영화가 많이 상영된다.

현실 세계가 답답하다 보니, 영화 소재도 자꾸만 잊혀버린 과거를 떠올리거나,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는 것 같다. 그 시기가 현실보다 밝던 어둡던 간에 말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시국과도 잘 어울린다.

국민을 위하는 척 국민을 속이고 기만한 행위도 밀정이라 부를 수 있으려나.

 

 

 

 

 

이런 역사 영화들은 감상평을 적기가 애매하다.

단순한 영화로만 보기에는 역사의식으로 인해 다소 불편하고,

그렇게 불편하게만 보자니 영화는 그저 허구를 가득 품은 쇼 비즈니스 상품이라는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역사적 배경의 영화를 볼 때면

역사라는 것이 애인과 팝콘을 먹으며 배우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주입되는 정보가 진실로 왜곡될까봐 두렵다.

 

 

소설책을 덮으며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어 라고 말하듯

영화를 보고 나서 역사와 맞지 않다고 말하는 모순을 나 또한 겪게 될까봐 걱정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역사에 대해 절대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이다.

 

 

 

 

실화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영화를 다 보기 전까지 역사를 찾아보지 않았다.

어떠한 의식과 관념에 빠져 역사 검토를 위한 감상이 되지 않길 바랬다.

 

 

역사 상식이 한없이 부족해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쏙 뺀 글이라

어느 영화의 리뷰보다도 소극적인 리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흥무관학교.

이 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의열단의 이야기로

일본경찰이 된 조선인과 의열단의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밀정이란 남을 살피는 사람, 즉 간첩을 의미한다.

영화는 누가 뭐래도 이정출(송강호 분)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는 일본 경부까지 올라간 조선인으로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핍박했던 인물이다.

 

 

당시 시대상으로는 본인 역시 독립운동을 쉽사리 했을지 의문이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일본을 상대로 목숨 건 투쟁이 과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렇기 때문에 독립 운동가들의 숭고함이 빛나는 것 아닐까?

나는 고문 준비만 해도 모든 걸 술술 불 것 같다.

죽음 앞에 초연해지려면 이미 사상이나 목숨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죽기 전까지 열혈 독립운동가였다가, 모진 고문에 모든 걸 털어 놓는다면

후세는 그 사람을 독립운동가로 받아줄 것인가, 그깟 목숨 따위를 구걸하기 위해 대의를 저버린 변절자로 볼 것인가?

 

 

누가 어떤 선택을 했던 간에 진심으로 가슴 아픈 건

같은 민족끼리 속고 속이는 사이가 되어

누가 애국을 하는지, 누가 매국을 하는지,

누가 속고 있는지, 누가 속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시대상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해 본 사람은 삶에 대한 간절함을 갖게 된다.

문득 영화 아수라에 등장한 검사 김차인이 떠오른다.

정의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가

죽음의 입구에서는 조건 없이 정의를 버리는 그의 이중성.

그것은 살고자 하는 본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성이 아닐까.

 

 

 

 

 

이정출(송강호 분)은 무엇 때문에 일본 경찰이 되었던

김우진(공유 분)은 무엇을 위해 독립운동가가 되었던

개인사 때문이건, 신념때문이건, 역사적 배경 때문이건

두 사람은 같은 핏줄임에도 마주봐야 한다. 대치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가 불편해도 마주봐야 하는 대치점이다.

속고 속이는 시대사. 구속의 시대에서 나름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정출은 일본의 경찰로서 정보원들을 통해 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김우진을 통해 조직의 우두머리인 정채산(이병헌)을 잡아들일 계획을 준비했지만

본의 아니게 김우진의 계략으로 정채산과 술로 하룻밤을 보낸다.

 

 

이정출이 무엇 때문에 일본 경찰이 되었는지 모르듯이

경부까지 단 이정출이 무엇 때문에 김우진을 돕게 되었는지 모른다.

(경부는 지금으로 치면 5급 정도 되는 공무직이다. 5급이면 당시의 일본인도 오르기 힘든 위치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그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마음 놓고 술 한 잔 같이 할 사람이 없던 이정출에게 김우진과 그들의 조직원들에게 인간의 향기를 느꼈는지,

아니면 본인도 숨길 수 없는 조선인이라는 핏줄로 이어진 동족의식이 뒤늦게 발현된 건지

영화 속에서는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다. 그저 그런 연유 아니겠는가 하고 추측될 뿐이다.

결국 이정출은 밀정이 되어 김우진을 도와 일본의 의열단 검거 계획을 방해한다.

그러나 결국 밀정이 탄로 나게 되고 경찰직에서 퇴출된 이정출은 김우진과의 비밀 약속을 지키며 성공한다.

 

 

 

 

그러나 과연 밀정은 이정출이었을까?

영화는 표면상으로 일본과 의열단 사이의 간첩 활동을 하는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진짜 밀정은 김우진(공유)이었다.

처음부터 김우진은 동족임에도 일본의 경찰로 활동하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핍박하는 이정출에게 분노했다.

김우진은 정채산과 함께 이정출이 어느 쪽으로 붙는지 보자며 시험했고, 김우진은 이정출 내면에 숨겨진 작은 약점 하나를 잡고 늘어졌다.

(영화에서는 그 약점을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 결과 이정출은 김우진에게 난처한 상황에 계속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일본경찰에 모두 잡혀 법의 심판을 받으면서 이정출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고

법원에서 끌려 나가며 둘만의 비밀 약속을 간직한 김우진의 옅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이 김우진의 밀정인 줄 모른 이정출은 김우진의 계략에 속아 폭탄을 터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김우진은 감옥에서 흐르는 눈물과 함께 한없이 웃을 수 있었다.

 

 

친한 척은 해도 친해질 수 없었던,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했던 관계는 철저하게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숨긴 채

속여왔던 자신의 밀정이 성공한 것이다두 밀정의 승부는 김우진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다시 밀려오는 공허함은 우리의 역사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속인 김우진도, 속아 넘어간 이정출도, 일제 강점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의 피해자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과 내가 하나의 핏줄을 대고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정출의 행각은 당시로서는 극악무도한 짓이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혔음이 분명하다.

그의 마지막 기이한 행동이 이런 영화까지 나오게 된 모티브를 제공했다. 그 행동의 이유는 오늘날까지 알 길이 없다.

 

 

역사적 관점이 아닌 영화로만 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인물들에게만 초점을 맞추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러다보니 영화 내용보다도, 슬픈 역사를 간직한 대한민국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다.

 

 

부디 같은 땅에서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

 

 

 

 

 

- 대중성 : ★★★★☆ 우리나라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어 관심이 높다!

                             애국주의, 역사물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추.

- 작품성 : ★★★★☆ 음향과 소품, 의상들 디테일이 탁월.

                             영화 내용이 사건 중심으로 쏠려 인물들의 고뇌의 충분한 설명이 아쉬움.

- 연기력 : ★★★★★ 송강호를 필두로 믿고 보는 배우들로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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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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