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소리소문 없이 내려 아스팔트를 적신 오후, 오랜만에 국립극장을 찾았다.

이 곳은 지리적이나 교통편으로 생각하면 찾아오기 힘들어도 막상 찾아가면 언제나 기분 좋은 공간이다.

마치 산 속의 요새 같다고나 할까. 상쾌한 기분과 함께 잠시 삭막한 도시를 떠나온 안락함마저 받는다.

 

 

 

마당놀이를 노천극장이나 원형무대가 아닌 실내 공연장(해오름극장)에서 하면 흥이 날까?

프로시니엄 무대는 관객과 무대가 철저히 구분되어 있어 마당놀이처럼 관객의 호응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입구에 들어서자 배우들이 마당쇠 분장을 하고 로비에 나와 엿을 팔며 마당극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흥겨운 가락과 함께 엿까지 파니 공연 전부터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국립극장의 이런 모습이 반가웠다. 국내 유명 공연장, 그것도 국립극장이 공연장 시설의 문턱을 낮추는 시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공연장에 종사하는 담당자들은 극장의 변형을 싫어하는 편이다.

안전이나 손상, 그 밖의 여러 운영상의 이유가 있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훌륭한 극장이란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새롭게 변모하느냐, 작품을 얼마나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극장이 새롭게 변모해야지, 극장에 작품이 재단되어 들어갈 수는 없다.

극장의 변형이 두려워 새롭고 실험적인 공연이 전혀 이뤄질 수 없는 공간이라면 이미 그 장소는 공연장이라고 불릴 수 없는, 또는 특수공연장이라는 이름의 반토막짜리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장르를 특화한 특수 공연장이 아니라면 배우가 역할을 맡을 때마다 변화하듯이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공연장 역시 변화해야 한다. 어제 다른 작품을 관람 온 관객이 오늘 새로운 작품을 관람 와서 어제 온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장황하게 무대에 대해 이야기 한 이유는 역시나 앞에서 이야기한 공간에 대한 우려를 이 공연은 새롭게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 이미 뭔가 기존의 공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방식으로 마당놀이 무대를 재현해냈다.

마당극임에도 오케스트라피트가 있었고 국악을 라이브로 연주했다.

 

30명도 넘는 국립창극단원들이 총출동해 멋진 춤과 노래를 선사하며 무대를 꽉 채웠다.

작년에는 춘향이 온다가 공연되었고, 올해는 놀보가 온다’. 공연 중간에 홍길동이 나와서 내년에 보세라며 사라진 걸 보니 내년에는 길동이 온다가 공연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정상급 극단의 연기력과 손진책 연출가의 흠잡을데없는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완성도 있는 공연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공연을 보면서 조금은 뒷맛이 씁쓸했던 것은 최순실 사건과 관련한 풍자와 패러디가 극중에서 많이 나왔는데 마당놀이에 있어서 해학과 풍자는 당연한 것이겠고, 나왔던 풍자와 패러디도 현 사태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내용과 소재를 가지고 공무원 신분과도 같은 국립창극단이 비꼬는 듯한 행위가 다소 통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공무원은 비판하면 안되느냐라는 의견보다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 최순실, 그 밑에 낙하산, 뇌물 관계자, 행정부 온갖 국정 관련자들이 줄줄이 의심받고 조사받는 마당에 내가 잘했네, 너가 잘못했네, 하듯이 공공기관 성격의 국립창극단이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해야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국립창극단보다도 더 신랄하게 현세태를 까는 영상과 글이 넘쳐 난다. 관객들은 이미 그 국정농단 사태를 깔만큼 깠고 욕할 만큼 욕한 사람들이다. 오히려 공연 속에서는 서민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위로가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 흥부놀부를 보면 흥부를 보면서 나를 보고, 놀부를 보면서 권력층을 빗대 욕을 하는 통쾌함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흥부놀부를 보면 차마 흥부도 놀부도 닮아버리지 못한 애매한 위치의 나를 발견하여 어느 쪽에도 공감이 닿질 못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더 이상 흥부놀부의 이야기에서 힘을 얻지 못한다.

흥부처럼 돈은 없지만 겁마저 없어 애를 마구 싸지를수도 없고, 놀부처럼 쌓아둔 재산이 있어 누구에게 큰소리 칠 형편도 못 된다.

작품 자체는 유쾌하고 흥겨웠지만 작품의 어느 인물에도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만의 드라마를 유쾌하게 쫓은 기분이다. 돌아가는 버스에서조차 기억되지 못할 신기루 같은 즐거움뿐이었다.

문제는 서민들을 대표하는 오락거리에 현 시대의 서민이 없다는 것 아닐까?

공연은 재미와 웃음은 선사했지만 최순실을 풍자하며 공감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과연 나(국민)란 사람은 누가 공감해주나.

극 속의 흥부는 시대를 못 쫓아오는 게으르고 한심한 인물이고,

놀부는 돈 조금 있다고 안하무인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현시대의 흥부 놀부는 그렇지 않다.

 

2016년도 흥부들은 죽도록 성실하고 열심히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열심히 아끼고 아낀 쥐꼬리로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박을 열 듯 로또 사기 바빴다. 빈 박을 볼때마다 실의에 빠졌고 더 이상 애를 낳지 않았다. 그리고 낳은 애들도 갖다 버렸다. 그렇게 이혼하고 독거하였다.

2016년도 놀부들은 안하무인을 떠나 이제 무서운 괴물이 되었다. 안 보이는 곳에서 온갖 비리를 일삼았고 감옥 좀 다녀오는 걸 운이 없다고 했다. 어차피 그들의 곳간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곳간이 비면 곳간 채로 뺏으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놀부가 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내년에도 우리는 흥부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질 잭팟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까?

 

조심하자.

진짜 무서운 놀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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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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