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 [아이 엠 래스]를 리뷰한 적 있다.

진부한 액션 영화라고 씹어댄 게 엊그제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또 만나니 괜스레 미안해진다.

2016/12/23 - [[리뷰]에스프레소/[영 화 리 뷰]] - [영화리뷰]클리셰, 전형적인 장르적 플롯과 규범의 사이, 영화 아이 엠 래스

 

오랜만에 만나는 웨스턴 서부극에 영화 감상 전부터 자못 설렜던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에단 호크의 그 텅빈, 어찌 보면 그윽하기도 한 그 눈빛과 마주하면

때때로 수컷인 나도 여성 팬들의 가슴 떨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수를 해야 하는 자와 악당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그 팽팽한 대립을 뚫어버리는 강렬한 총격전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시시했다.

 

(에단 호크)은 인디언들을 살육하는 무모한 살인을 그만두고 기병대를 탈영했다.

그렇게 개 레이디를 데리고 멕시코로 떠나던 중 우연히 타락한 신부를 만나

덴튼(DENTON)'이라는 마을 정보를 듣고 그곳으로 향한다.

 

언제나 그렇듯 웨스턴 영화에서는 이방인을 경계하는 텃새가 존재한다.

그 시대에는 총이라는 이름으로 뺏고 빼앗기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였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역시 이 마을에서도 갑자기 나타난 폴에게 장난을 거는 마을 보안관의 아들과 문제가 생긴다. 그게 발단이 되어 그의 개 레이디가 그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복수의 계기가 된다. 이름처럼 개 레이디는 폴에게 있어 연인이자 사랑하는 친구였을 것이다.

 

총은 힘, 즉 권력과도 같다.

총을 쥐고 있으면 쏘고 싶은가보다. 그것이 나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될 테니까.

총을 가진 사나이들은 항상 총을 자랑하고, 총을 과시하고 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서부극에서 보안관이야말로 합법적인 총(권력)을 가진 자가 아닐까.

 

보안관은 늘 정의롭거나, 위험하다.

존 트라볼타는 여기서 권력자로 등장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의와 위험 사이에서 분명한 색깔도 보이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이게 뭔 개죽음인가 싶을 정도로;;)

 

확실한 복수를 마무리 지은 폴은 꿩 대신 닭처럼 죽은 레이디대신 마을 소녀 메리 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난다.

 

떠날 때마다 레이디를 데리고 가는 우연은 서부극의 도상으로 봐야 할까, 캐릭터 성격으로 봐야할까?

 

에단 호크의 눈빛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의 눈이 감정을 알려준다.

반면 존 트라볼타는 자신의 아우라와는 별개로 연기의 무게가 점차 가벼워지고 있다. 주연과 조연 사이의 애매한 위치의 역할이 마치 주조연 사이의 출연료를 나타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영화 자체의 매력도 아쉽다. 매력적인 주인공만큼 매력적인 악당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에 대한 복수이면서도 개에 대한 디테일한 관계 묘사가 많이 드러나지 않아 캐릭터의 감정을 공유하기 다소 아쉽다.

떠날 때는 말없이, 라는 미덕은 개랑 바꿔버리고 소녀를 데려가는 저 응큼함이란^^;;

 

엔딩에서 오프닝 장면의 신부가 마을에 도착하며 악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악이 자리 잡는 모습은 그나마 지옥 같은 현실의 반복을 잘 표현한 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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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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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진부한 설정은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애석하게도 이 영화가 딱 거기 부합한다.

영화 속 내용이 모두 어디선가 한번쯤 봤던 내용들로 가득하다.

 

과연 이 영화는 클리셰를 남발하였나, 아니면 장르적 네러티브를 적극 활용하였나?

 

여기서 잠깐 용어 해설.

클리셰는 반복되는 특성을 지칭하는 말로 다소 부정적인 표현이다.

장르적 플롯과 규범은 그 영화 장르가 가진 공통된 구성과 양식을 말한다.

 

이 영화는 복수극 액션영화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1.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지사.

2. 그 문제에 연루된 아내.

3. 비밀을 은폐하지 않은 아내의 죽음.

4. 경찰에 호소하는 남편(주인공)과 덮으려는 경찰들.

5. 복수를 준비하는 남편. 알고 보니 전직 특공대 출신.

6. 동료를 만나고(동료도 특공대 출신) 도움을 얻고.

7. 아내를 죽이라고 지시한 도지사와 그 수하들을 파멸시킨다.

 

위의 대강의 줄거리만 봐도 떠오르는 영화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액션영화와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

 

1. 영화 초반부터 내가 범인이야하는 악당(도지사)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액션 영화가 그렇듯 상대는 절대적 우위인 사람이어야 한다.

2. 가족 중 누군가가 의문의 또는 불의의 피해를 입어야 한다.

3. 복수하는 사람이 전직 특공대, 특전사, CIA, FBI쯤 돼야 한다.

4. 복수를 혼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벅찰 땐 동료를 찾아야 한다.

5. 그렇게 모인 팀은 대개 무적에 가깝다.

6. 처절한 응징으로 훌륭한 복수를 끝맺는다.

7.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평범한 사람이 된다.

 

사실 이 영화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전형적인 장르적 플롯과 규범을 교과서처럼 따르고 있다. 다음 장면까지 어렵지 않게 예상될 정도다. 그러나 그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장면이나 행동을 보며 안정감을 갖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할리우드가 수많은 시도와 경험 끝에 터득하게 된 일종의 법칙이다.

 

어느 장르던지 간에 장르적 플롯과 특성, 규범이 존재한다.

웨스턴은 총, , 카우보이 모자, 부츠 등 도상과 함께 복수를 하는 플롯을 갖고 있고

멜로드라마는 비련한 여자, 왕자 같은 남자, 방해하는 배경, 극복하는 이벤트 등으로 플롯을 채우고 있다. 공포 역시 처음엔 절대 믿지 않는 사람들, 그걸 또 꼭 확인하려는 주인공들, 설치다 먼저 죽는 엑스트라 커플들, 비밀이 밝혀지고 원한을 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사라지는 소심한 영혼들이 반드시 등장한다.

우리는 모두 이런 내러티브에 익숙해져 있고, 또 그 익숙함을 무의식 속에서 쫓고 있다.

영화를 보다가 익숙함을 벗어난 장면이 나오면 ? 뭔가 이상한데?” 라는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위의 본 영화 줄거리에서 죽은 아내를 납치된 딸로, 남편을 아버지로 바꾸면 우리가 열광한 테이큰이 된다. 테이큰은 성공하고 아이엠래스는 망한 것의 차이는 바로 몇 개 바뀐 저 설정 때문이다. 테이큰 역시 전형적인 장르적 플롯과 규범의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익숙한 클리셰에서 딸을 구하는 아버지라는 설정이 신선했기 때문이다.

 

토니스콧 감독의 맨 온 파이어 라는 작품이 있다. 결과적으로 흥행과 비평은 성공적이다.

덴젤 워싱턴이 주연이고 전직CIA전문 암살요원이다. 암울한 과거로 은퇴 후 술로 의지하고 살다가 맡게 된 보디가드 업무. 한 소녀를 지키는 가벼운 일이다. 소녀를 통해 스스로 행복을 찾아가던 중 소녀가 살해당하고 덴젤은 깊은 빡침으로 복수의 방아쇠를 당긴다.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비슷한 이유는 전직요원이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내용이 있다. 가족이 아닌 소녀를 지킨다는 것과 소녀를 통해 본인의 삶이 스스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 약간의 바뀜이 큰 차이를 보인다.(믿거나 말거나지만 일부 관객들은 한국영화 아저씨가 이 영화를 모티브로 했다고 주장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란 영화도 많은 캐릭터에 비해 정작 할리퀸 밖에 못 챙긴 다소 실망스러운 영화지만, 정의의 사도 대신 악당들이 세상을 지킨다는 해괴한 내용으로 영화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처럼 클리셰를 조금만 비틀어도 사람들은 신선해한다.

 

장르적 규범이 자로 잰 듯 정확한 통속극 드라마도 요즘은 다양한 시도들로 변화하고 있다. 죽었다 살아나기도 하고, 살았지만 영혼이 들락날락 하기도 하고. 김치로 싸대기도 맞아보고.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가 보는 연속극 속 내용들이다.

 

영화는 분명하게 결정해야 한다.

안전하게 장르적 플롯과 규범을 따라갈 것인가,

신선하게 클리셰를 비틀어 패러다임을 확장할 것인가.

 

전자만 강조하면 익숙하긴 하나 자칫 뻔하고 지루한 결과를,

후자만 강조하면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장르는 이미 한정적이고, 우리는 영화의 홍수를 겪으며 다양한 취향과 까다로운 안목을 갖게 됐다. 그것이 자극적이건, 충격적이건, 새롭건, 화려하건 기존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탈피해야 한다.

 

한때 토요일 밤의 열기나 그리스를 통해 청춘스타를 대표였던 존 트라볼타

그리고 젊은 시절 보여준 브로큰 애로우나 페이스오프의 액션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월을 탓하기에는 당신이 짊어진 과거의 영광이 너무 많다.

늦지 않았다.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처럼 인턴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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