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사랑도 늘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에이미. 우연히 비슷한 생각의 엄마들을 만나며 나쁜 엄마가 되기로 한다.

 

나쁜 엄마란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나 자신을 찾는 삶을 시작하는 것. 사랑 없는 남편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아이들의 뒤치다꺼리에서 탈출하며, 직장에서 벗어나 삶을 만끽하는 인생을 시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로 줄거리에 대한 기대보다 세 캐릭터의 유쾌한 입담과 장면들이 매순간 즐거움을 제공한다. 여전히 밀라 쿠니스의 미모는 눈을 뗄 수 없게 하며, 다른 두 주인공 역시 각각의 캐릭터대로 웃음과 공감을 톡톡히 선사한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주제를 통해 공감과 이해는 물론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 추천할만한 코미디 영화이다.


PS. 영화가 끝난 후 배우들과 그녀들의 실제 엄마가 함께 나눈 인터뷰 영상은 엄마의 소중함을 더 깊고 진지하게 전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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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영화 킹콩을 기억하는가?

그 이전에도 고질라나 쥬라기공원 같은 괴수 영화를 좋아했던 나지만,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은 나에게 SF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감동이었다. 그것은 마치 최근 본 영화 미녀와 야수처럼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을 그린 한 편의 애절한 러브스토리 같았다.

2017, 12년이나 흘러 우리의 기억 속에 추억의 명화로 자리잡아갈 때쯤 킹콩의 후속작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전작이 너무나도 훌륭한 나머지 우려심은 당연했으나 워낙에 유명한 영화이기에 어쩌면 당연했던 후속작 출시가 되려 늦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킹콩이라는 영화계의 대표적 괴수 아이콘을 가지고 그것도 명작으로 불리는 피터 잭슨의 킹콩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두 영화의 비교 분석은 숙명이다.

포스터

포스터를 봐도 이미 두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확연히 드러난다. 2005년작 킹콩(이하 킹콩’)은 여자를 지키는 거대 숫컷으로, 2017년작 콩(이하 ’)은 군인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내용으로 보여주고 있다.


배경

배경은 둘 다 해골섬(스컬 아일랜드)이다. 그러나 그 곳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른데 킹콩은 영화 촬영을 위해 미지의 섬을 찾아가는 내용이라면 은 콩의 존재를 밝혀내기 위해 군인들을 데리고 해골섬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해골섬의 무서움도 킹콩은 지구상에 있는 미지의 섬이라면, 콩의 해골섬은 지구 안쪽 내부와 연결되는 곳으로 지구 내부에 많은 괴생명체들이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막상 해골섬 내 분위기는 킹콩이 압도적이다. 원주민들의 표정과 음산한 분위기, 장엄함 등은 킹콩이 앞선다. 또한 콩이 다양한 괴생명체로 섬 안의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면 킹콩은 뉴욕으로 잡혀 와 도시를 휘젓는 광경을 보여준다.

2005년작 킹콩 배경



2017년작 콩 스컬 아일랜드

 

목적

킹콩은 영화 촬영을 위해 간 미지의 섬에서 킹콩을 우연히 발견한다. 배우 잭 블랙은 대박 영화를 위한 욕망으로 가득 찬 감독으로 나온다. 이와 달리 콩은 이미 콩의 존재를 아는 박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증명하고자 군인들을 데리고 섬으로 들어간다. 콩에서는 사무엘 잭슨이 부하의 죽음에 대해 복수로 가득 찬 군인으로 나온다. 그러나 콩의 사무엘 잭슨과 킹콩의 잭 블랙의 광기는 비슷하지만 복수심보다 성공에 대한 욕망에 더욱 공감 간다. 잭 블랙은 급기야 도시로 킹콩을 데려오는 대형사고까지 치고 만다.

 

킹콩

킹콩은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이다. 그러나 섬세한 동작과 표정은 단연 킹콩이 앞선다. 킹콩의 눈빛은 다양한 감정표현까지 해내고 있다. 이에 비해 콩은 다소 밋밋한 표정과 원시적인 움직임으로 다소 아쉬움을 주고 있다. 콩은 스컬섬의 원시인들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면, 킹콩은 제물을 바쳐야 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킹콩의 여주인공 나오미 왓츠는 제물이 되어 킹콩에게 바쳐지게 되었다. 그러나 킹콩은 나오미 왓츠를 지키는 존재가 되고 콩은 그저 자신의 안방을 지키는 게 주 목적인 것처럼 묘사된다.

주변인물

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과학자, 학자, 전문가, 군인.. 그러나 대부분이 그저 의미없이 등장해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킹콩에는 단 네 명으로 압축된다. 킹콩, 작가, 여배우, 감독. 이 네 명의 관계가 이 거대한 사건을 만들어낸다.

간단히 비교해 본 내용은 위와 같다.

전체적 내용을 보면 두 작품의 연관성은 없어서 비교라는 것이 무색하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원작을 리메이크 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결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혹성탈출처럼 시리즈 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매번 배경을 설명하고 콩을 찾아나서기 위한 영화 속 준비과정이 너무나도 지루하다. 등장 이후부터도 킹콩은 그래도 킹콩을 실컷 보여주기라도 했지만 콩은 콩이 등장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봐야 한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피터 잭슨의 킹콩은 콩:스컬 아일랜드 덕에 더욱 더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콩 스컬 아일랜드는 톰 히들스턴과 사무엘 잭슨 등 훌륭한 배우를 썼음에도 스토리가 부진하여 살려내질 못했다. 그리고 여배우인 브리 라슨 역시 애매한 위치에서 킹콩과의 조우 장면을 재연해 인간과 콩의 교감 부분을 아쉽게 했다.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하던 킹콩을 그저 빅 몽키로 다시 되돌려버린 콩 스컬 아일랜드에게 심히 유감이다.


결국 콩 스컬 아일랜드는 이렇다 할 명장면 하나 남기질 못했다. 그에 반면 킹콩은 아래 사진 한 장만으로도 다시금 가슴을 설레게 한다.

PS. 피터 잭슨의 영화 킹콩은 빵떡엄마와 처음으로 같이 본 영화라 더욱 애착이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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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지 않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국부론]으로 유명한 정치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격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고 적고 있다.



꿈을 꾼다는 것이야말로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 아닐까.

꿈은 삶의 목표를 부여한다. 연인관계일지라도 자신의 꿈이 없는, 목표가 없는 삶은 관계의 불안함과 자기 혐오에 빠질 수 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

라라랜드는 환상의 세계,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를 가르키는 용어다.



실패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만년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 두 사람은 꿈과 목표를 잃고 서서히 침몰하는 배처럼 주저앉고 있었다. 


-서로를 만나기 전까진-



서로에게 소중한 감정으로 찾아온 두 사람.

위로와 용기가 필요한 두 사람에게 서로는 잠시 삶의 목표가 된다.

상대방을 위해 흔들리던 자신의 꿈과 현실을 돌아보고 미래를 조정한다.



비록 사랑했음에도 이별했지만


사랑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별에도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위해 노력하던 두 사람은 그렇게 상대방의 꿈이 되었다.



오프닝부터 롱테이크로 압도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라라랜드.

놀라운 테크닉의 카메라워크, 눈을 떼게 하지 못하는 황홀한 춤, 감미로운 재즈, 특히나 귓가에 영원히 맴돌것 같은 OST는 영원히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를 가슴 속에 소장하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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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tryyourbest5.tistory.com BlogIcon Richard 2017.03.31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극장에서 보고 싶은데...ㅠ 시기를 놓쳤네요;;
    뮤지컬 영화 안좋아하시는 분들도
    이 영화는 재밌다고 해서...
    몇개 안남은 극장 찾아서 가야겠네요..ㅎㅎ
    좋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제목부터 풍기는 느낌과 시작 장면의 이미지들은 "우와, 이거 간만에 괜찮은 느와르를 만나겠는데?" 라는 생각이었다. 나무나 베라고 만든 정글도(마셰티, 또는 마테체라고도 함)를 마구 휘두르며 사람을 베는 오프닝은 잔혹한 느와르를 예고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주인공이 두문택이라...

 

두문택은 코미디배우로 슬슬 굳혀가는 게 아닌가 했기 때문이다. 왠지모르게 정자왕3D 이후 얼굴만 봐도 웃긴 이 배우가 느와르 주인공?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진행하면서 코미디와 느와르를 오락가락한다. 이상하게 다른 모든 장면은 다 느와르인데 두문택만 나오면 코미디 영화가 돼 버린다. 이 영화에 보스로 등장하는 황추생은 전작들 역시 무거운 역할을 주로 맡아온 무게감 있는 배우다. 이런 양극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코믹느와르는 심형래의 라스트 갓 파더 이후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은 장르였다(이 영화에서도 심형래와 하비 케이틀은 느와르와 코미디 장르를 각각 짊어지고 망작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하비 케이틀 아들이 심형래라니.. 지금 생각해봐도 헛 참...ㅋㅋㅋ). 여튼 다시 영화 깡패들로 돌아와서 두 배우는 마치 각각의 영화를 찍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결국 어디서 웃어야하고 어디서 진지해야할지 감독도 포기한 듯 하다.

 

게다가 갱생에 성공해서 두 번 다시 깡패짓 안하겠다고 다짐한 주인공은 직업여성의 관계 중 펼친 타로점 한 마디로 인해 바로 대부의 꿈을 갖게 된다. 애당초 주인공이 타로점을 핑계로 숨겨온 욕망을 발현한 것인 양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했으나 실상은 그냥 개연성 없는, 납득되지 않는 구성으로 보인다. 대부 역시 굳이 그런 결정을 내릴 필요나 동기가 없었고, 만약 보스 투표 시 두문택이 항의하며 11투표제를 주장하지 않았다면 보스 황추생의 계획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인가. 이처럼 줄거리나 반전 역시 빈약하다.

 

그래도 느와르로 마무리하기 위해 마지막 패싸움 장면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심신미약자, 노약자, 임산부는 당연히 보지 않길 당부 바라며, 바쁜 이들, 정통 느와르 팬들도, 코미디를 사랑하는 분들도 나처럼 낚여서 보게 되지 않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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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일터로 사라진 후 우리의 애완동물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생각.

이것이 이 영화의 모티브다.

 

 

 

 

고양이를 기른 적 있다.

그 녀석을 홀로 집에 두고 일터로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잠글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비록 주인을 따르지 않는 고양이라지만 녀석은 언제나 무심한 듯 창문틀에 앉아 멀어지는 나를 보고 있었다.

 

 

일하는 내내 그 모습이 아른거렸다.

설마 하루종일 창문 앞에서 나를 기다릴까? 따뜻한 햇살 아래서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겠지?

아마 오늘도 멍하니 사람들 지나치는 모습을 보며 사색에 잠길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만날 퇴근시간을 기다리고는 했다.

 

 

지금은 그 녀석을 떠나보낸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치는 고양이들을 볼 때마다

슴 한 구석에서 지긋이 통증이 올라오고는 한다.

 

 

그 이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고양이를 피했고, 무의식적으로 길고양이들을 더 아꼈다.

이 영화도 무의식적으로 선택했지만 보는 내내 가족이었던 녀석의 기억이 떠오르지 않기를 의식적으로 바랬다.

 

 

 

 

영화는 다양한 애완동물의 행동과 습성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주로 등장하는 개와 고양이는 그 특유의 행동을 너무나 정확히 포착해 인상 깊었다.

녀석이 주로 하던 공놀이나 손짓 등을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애완동물들의 짧은 해프닝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가족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개 맥스는 오직 맹목적으로 주인을 따르는 충성스런 삶을 살아간다.

주인은 그런 맥스의 마음도 모른 채 길거리 개 듀크를 데려온다.

이 때문에 애완견과 유기견의 영역 쟁탈전이 시작되고

인간에게 버려진 유기동물들의 공격과 유기동물보호소 직원의 추격을 함께 헤쳐 나가며

맥스와 듀크는 서로에게 친구 이상의 우정을 갖게 된다.

 

 

 

 

이 영화에서 맥스를 형 또는 언니로, 듀크를 동생으로 생각하고 보면 형제간의 우애와 닮아 있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첫째에게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오면 사랑과 관심을 뺏기 위해 다투지만

결국 가족이자 형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맥스에게 이제 듀크는 둘도 없는 가족이다. 듀크 뿐 아니라 많은 친구들의 관계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핏줄만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함께 사는 것만을 가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내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를 위로하고 걱정해주는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 가족의 의미를 확장해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평(아이들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 재미 : ★★★★★ 이렇게 귀엽고 아기자기한 동물 캐릭터들이 잔뜩 나오는데?!

- 감동 : ★★★★☆ 앙숙의 맥스와 듀크의 우정, 그리고 맥스의 친구들의 의리! 이들이 진정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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