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어느 엄마와 소녀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려 하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너 그럼 비 홀딱 맞고 감기 걸려!”
엄마는 크게 혼냈고, 아이는 혼날수록 빗소리를 잊을 만큼 더 크게 울었다.

이런 모습은 유아를 가진 부모 자식 간에 늘상 있는 일이다.
단지 아이는 우산을 혼자 써보고 싶었던 거고, 엄마는 아이가 우산을 쓰지 않으려는 투정으로 생각한 것이다.

부모들은 내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만약 같은 상황에서 친구가 우산쓰길 거부했다면 ‘왜?’ 하며 당연히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분명 우산을 쓰지 않을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는 우산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물을 필요도 없이 혼부터 냈다.

만약 그 엄마가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봤다면 아이는 분명 말했을 것이다.
"내가 한번 써볼게"

우선 아이의 행동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 전에 행동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순서다.
자신의 의견이 충분히 전달되면 비록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마음에 쌓이지 않는다. 무턱대고 혼내면 혼났다는 생각만 남게 된다.

어리기 때문에, 내 자녀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자유의사표현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또 하나의 가정 폭력이다.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너에겐 우산을 혼자 쓰겠다고 말할 권한이 없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해.”
“넌 우산 혼자 쓰면 안 돼. 왜냐고? 당연히 넌 우산 하나도 똑바로 들지 못할 테니까.”
“장난칠 게 뻔한데 내가 왜?”

권력자의 횡포로 비춰지진 않는지.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헷갈리지 말자. 보호는 상대를 위한 마음이고, 통제는 나를 위한 행위이다.

그런 작은 행동조차 믿음을 갖지 못하는 부모가 과연 아이가 크면 믿게 될까?
아이는 증명 받고 싶어 하는데 부모는 부정하려 하는 것.
이런 부모자식 관계는 조금씩 틀어지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네가 그럼 그렇지”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네 까짓 게 무슨...”
결국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되고 말텐가?

비 오는 날 우산 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부모로서 교육이 소홀한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은 우산 쓰는 법을 가르쳐 주는 날이다.
비를 맞으면 춥고, 자칫 감기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날이다.

“너는 앞으로 수백 번의 비를 보게 되겠지. 그럼 비를 피하고 우산 쓰는 법을 배워야 해. 처음엔 다 그래. 비도 맞고 감기도 걸리지. 아빠도 가끔 비 맞고 감기 걸릴 때 있어. 그래서 비올 땐 우산 꼭 챙기고 비 맞지 않도록 해야 해. 우리 아들도 그럴 수 있지?”

아이가 비 맞기가 두렵다면 애초 비 오는 날 아이와 집 밖을 나선 게 문제다.

“나중에 크면 저절로 알게 돼.”
라고 말하는 부모가 분명 있겠지.

나중에 크면 저절로 추억이 생길까? 저절로 서로가 소중해질까?
저절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진 않는다. 시간은 많지만 추억은 짧다.
소중한 기억일수록 선명하게 남는다.

전에도 말했듯이 아이들은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은 꼭 하고야 마는 단순한 녀석들이다. 해보고는 재미없거나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언제 하고 싶었냐는 둥 등을 돌리고 만다.

연인과 대화할때 하는 리액션처럼
아이의 행동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왜? 하고 생각을 물어보자.
더 신나서, 더 진지하게 진심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교감이 이뤄질 수 있다.

또한 해 봐, 라는 말을 자주 하려고 한다.
안된다면 안되는 이유를 말해주고 그래도 하겠다면 조건부 승인을 해준다.
이렇게 아이는 또 선택과 타협, 자기결정권을 배운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말을 경청해야 아이도 부모를 믿고 따른다.

힘들다고 육아를 피할 순 없다.
책 같은걸 통해서 훌륭하게 키우는 노하우를 배우면 육아가 조금더 즐겁지 않을까.

아, 돈 많은 사람들이 제일 부러운 것은.
돈으로 수많은 물건들을 살 수 있어서가 아니라,
돈으로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살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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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척이나 호기심이 많다.
아무리 위험하다, 맵다 말려봐도 결국 그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고 했던가.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라서 먹고 싶다고 애원하는 와사비도 먹여봤고, 뛰고 싶다고 통사정해서 식탁에서도 뛰게 했다.

야생의 본능이 있는 새끼 동물은 몸을 움츠리지만
야생의 본능을 상실한 갓 걸음마 뗀 아기는 얼마나 위험한가?
단 하루라도 부모가 없다면 아이는 절대 유년시절을 안전하게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긴 세상은 내가 봐도 흥미로움 투성이다. 높은 것, 큰 것, 요란한 것, 희한한 것.
익숙하던 것도 다시 보면 새로운데 아이들 눈에는 이 모든 게 얼마나 신기할까?
그 신기함에 겁도 없이 뛰어드는 무모함도 인간의 능력 중 하나 아닐까.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은 막을 수 없다.
결국은 “그래 해봐라, 해봐!” 하며 시키게 된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란 없으므로.
불안하다고 아이의 행동을 막거나, 마지못해 시키게 될 바에야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감독 하에 해보라고 하는 게 아이와 관계에 더 좋다.

아이들은 인정받고 싶은 지도 모른다.
칭찬받고, 주목받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런 행동들이 관심과 애정을 요구하는 신호라면
안전한 상황 하에 신호를 받아주는 것이 좋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에게 신뢰감을 얻고,
부모는 아이에게 성취감을 주는 긍정적 효과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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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병상련이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 나와 비슷한 부모만 눈에 들어오는 것.
젊은 나이에 아이를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헌신하는
부모라는 존재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종종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아이에게 화를 내는 건지 혼내는 건지.
보는 이들 모두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데도
정작 본인들은 아이를 위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문득 나도 내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나는 그동안 화냈던 것일까, 혼냈던 것일까.
화를 내는 것과 혼내는 것의 차이는 뭘까?
 
아마도 그 목적에 있지 않나 싶다.
화를 내는 목적은 감정 분출을 통해 빠른 상황 종결에 있고
혼내는 것의 목적은 아이가 겪게 될 사회생활에 있어
깨달아야 할 규칙이나 위험으로부터 예방하기 위한 경고에 있는 것 같다.
 

화내는 것은 부모의 기분전환에 효과적이고,
혼내는 것은 아이의 사회성에 예방적이다.
 
아이 때문에 화를 낸다는 자기 합리화는
결국 자기 스트레스 해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모의 화로 인해 자기표현을 자꾸 숨기게 되는 아이는
어른이 되서도 화내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복종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화를 낸다는 것,
그것은 결국은 부모가 아이에게 “나 육아가 너무 힘들어” 라고 하는 응석은 아닐까?
 
육아에도 철학이 있어야겠다.
세월이 아이를 길러주지는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가 철드는 건 보너스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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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이엄마 2017.08.23 2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삐진 뒷모습이 너무 귀여워요
    화내는 것과 혼내는 것..
    힘들어요
    혼냈다 여겼는데 화를 낸 것 같기도 하고ㅜ
    보고 있으면 죄책감 느껴지고
    하루에도 열 두번 오락가락 합니다ㅠ

    • Favicon of http://ss2.kr BlogIcon 썅이 2017.08.25 0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쉽게 생각해서 마음이 쓰이면 화낸 것이라고 봐도 될것입니다. 양심이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것 같아요. 상황에 맞는 적절한 훈육을 했다면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한 화를 낼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엄마가 아깐 화내서 슬펐지? 미안 엄마가 너무 놀란 나머지 화를 내고 말았어. 00이도 다음부턴 그러지 않아주면 좋겠는데 할 수 있을까? 고마워" 이렇게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
나는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5박 6일간의 여름휴가를 보내며 진정한 육아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와 소통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2
그간 육아를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위한 착각일 뿐. 난 좋은 아빠, 멋진 남편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스로를 엄빠(=엄마 같은 아빠)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나도 퇴근 후나 주말에 육아를 체험(?)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3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육아가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 역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와의 소통 방식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4
나의 육아방식에 결함을 발견했다.
이번 여름휴가를 통해 아이가 4살이나 된 후에야 비로소 나의 육아 방식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4년 동안이나 육아 고통을 묵묵히 참아온 아내를 재발견했다. 그동안 그 고통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고, 느껴져도 아내의 등 뒤로 숨어버렸던 나를 고발한다.
 
5
이번 휴가는 여느 때와 달랐다.
어느 새 종훈이는 질문이 늘었고, 좋다, 싫다 가 확실했으며, 무엇보다 아빠를 원했다. 엄마만 찾던 종훈이는 이제 엄마와 아빠를 필요로 했다. 내가 아빠이기 전에 종훈이가 나를 아빠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6
휴가 기간에 도서관에 들렀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본 재테크 책들 때문에 책이 읽고 싶어져서였다. 그러나 아내의 부탁으로 대여할 육아 서적을 골랐다. <효과적으로 혼내는 법>과 <혼내지 않고 키우는 법>. 전문가들도 저마다 의견이 달라 한참을 고민했다. 평소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훈육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차이였다.
 
7
모든 답은 책에 있었다.
그토록 괴상하고 해괴망측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동만 골라하는 것 같던 종훈이의 '일상'이 책 속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모든 문제는 내게 있었다.
그토록 괴상하고 해괴망측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행동만 골라하는 것 같던 종훈이의 '마음'이 책 속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8
모든 것은 관심이 시작이다.
집에 육아백과, 0~3세 육아 등 여러 책이 있었지만 한번도 펴 본 적 없다. 문득 애완동물을 길러도, 꽃을 길러도 관련서적을 찾아보면서 소중한 우리 아이를 키우면서 책 한 권을 읽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빌려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귀차니즘 아내는 빌려온 책을 절대 읽지 않았다. 결국 내가 읽도록 하기 위한 빅픽처였다고 아내를 이해하기로 했다)
 
9
모든 것을 새로 배웠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 아이의 감정, 아이의 상태나, 아이의 기분, 아이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가짐까지. 책에서 가르치는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한 행동이 되도록 연습하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적용되는 진리임을 깨달았다.
 
10
내가 바뀌자 아이가 변했다.
늘 엄마를 떠나지 않던 아이가 내 손을 자꾸 잡고, 내 옆에서 잠이 들었다. 나를 찾고, 나를 보고, 나를 보며 웃는다. 놓쳐버릴 뻔했던 단 한번뿐인 아이의 소중한 시절을 이번 여름휴가에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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