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툭하고 건들면 톡 하고 터지는 지점이 있다. 누구는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릴 때가 그렇고, 다른 누구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그렇다. 그리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우리 모두의 첫사랑도 가슴 언저리 한 편에서 언제고 시릴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추억이라고 말한다.

 

추억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그만큼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 동질의 추억을 모으면 관객들은 금세 향수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훌륭한 소재들을 전면에 배치하고도 쉽사리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음악극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배경을 보자. (긴 제목에 따라 이하 당신의..’ 라고 함) 당신의..’1950년대 인천 부평의 미군부대 에스캄과 그 주변(삼릉)에서 음악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결국 이 극의 주요 키워드는 부평, 미군부대, 음악이다

 

극은 한 노인이 인천 부평의 어느 지하철 역 앞에서 변해버린 도시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한다. 스크린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던 오프닝은 어느 새 경쾌한 음악과 흥겨운 연주로 빠르게 진행된다.

 

주인공 용생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지만 큰어머니 집에서 살아가는 20세 청년이다. 용생의 아버지 역시 한때 기타리스트로 용생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맞아가며 기타를 배웠다. 그러나 공연에서 마음속으로 간간히 등장하는 아버지는 마치 천사인 듯 흰색 정장차림으로 나와 하모니카를 불며 인자하기 그지없다. 주인공 용생은 전에는 기타에 대한 꿈이 없었지만 어느 날 미8군 쇼 무대에 선 기타리스트를 보고는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 맹세한다. 친구는 그 곳의 싱어 연희 때문이라고 한다. 가족들에게는 기타로 공무원 두 배의 돈을 벌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사실 여기서부터 주인공 용생의 동기가 모호하다. (성공) 때문인지, 여자 때문인지, 아버지의 그리움 때문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이후 주인공의 행동이나 스토리가 힘을 잃게 된다.

 

2015년에도 같은 공연을 같은 극장에서 봤었다. 1년 새 내용이 미세하지만 많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변해버린 점은 주인공의 형인 용국이다. 15년도 공연에서는 용국과 연희가 사랑하는 사이였다. 모두들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꿈 즉 용생은 꿈(기타리스트)를 목표로, 용국은 성공(공부)을 목표로, 연희는 돈(큰 무대)을 목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시대 인물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캐릭터가 입체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친구인 종현도 15년도에서는 악보를 훔쳐 용생에게 건네주지만, 16년도에는 그 장면이 표현이 부족해 보인다. 그 장면이 곧 용생이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첫걸음의 시초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장면이다. 이런 장면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다보니 용생 외에 다른 이들은 그저 보조적인 인물로만 호흡하고 있다. 관객들에게 주인공 외에도 서브 캐릭터들에게 공감하고 자신과 닮은 점을 찾을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점을 찾을 수 없다. 큰어머니는 그저 혼내는 존재로, 형은 그저 위로만 해주는 존재로, 여동생 용미는 그저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은 아가씨로밖에 드러나질 못하는 것이다. 당시에도 궁핍한 상황에서도 어렵게 면학한 사람들은 용국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찢어질 듯 가난한 상황에서도 자녀들을 홀로 키운 분들은 큰어머니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며, 어린 시절 공순이로 주변에게 놀림 받던 지금의 60대 여성분들에게는 용미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신의..’는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려주지 못한 채 너무 용생에게 치우쳐지지 않았는가 싶다. 결국 제목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당신은 관객들이 아닌 용생인 것이다. 덕분에 불필요한 장면들도 눈에 띈다. 금복, 은복의 노란 샤쓰입은 사나이를 부르는 장면은 그 어떤 의미를 제공하지 못하며, 천사처럼 흰옷입고 나와서 하모니카나 불러재끼는 아버지는 진부한 통속극처럼 슬픔을 쥐어짜려고 하는 장치로밖에 안 보인다. 5명의 음악가가 비 오는 날 가게 문 닫고 나누는 이야기는 음악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공감할 수 없는 남 얘기일 뿐이다. 관객들은 마땅한 공감 캐릭터 없이 용생만을 쫓아야 한다.

 

그런 용생은 우리와 다르게 큰 역경없이(노력하는 장면이 크게 보이지 않았기에) 기타리스트가 펑크 낸 자리를 낚아채고, 용생 때문에 다른 기성 음악가들도 새로운 희망으로 오디션까지 보려는 희망이 생긴다. 그러나, 용생은 도둑질로 감옥을 가고, 연희가 미국으로 가게 되자 음악도 포기한다. 기쁠땐 연희를 찾다가 힘들고 괴로우면 아빠가 나타나 하모니카를 불어재끼고 사라진다. 그나마 형이 몽둥이질을 하며 관객들 마음을 대변해주니 다행이지, 정말이지 용생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삶은 큰어머니네가 도와주고, 음악은 친구 종현이가 도와주고, 기타도 종현이가 준비해줘, 그룹 더스트문도 종현이가 소개시켜줘, 심지어 연희도 종현이가 가깝게 연결해줘... 용생은 극 속에서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짜증나게 울며 칭얼대고 투정부리며 떼쓰다가 또 다시 기쁠땐 연희를 찾다가 힘들고 괴로우면 아빠가 나타나 하모니카를 불어재끼고 사라진다.

어떻게 이 철없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까?

195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용생의 이런 행동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는커녕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결국 제목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아름다운 시절은 관객들의 시절이 아닌 용생의 시절인 것이다. 이제 제목을 바꿔보자.

용생의 도둑질하고 연애질하고 기타치던 아름다운 시절

 

이것이 당신의..’ 가 훌륭한 소재들을 전면에 배치하고도 쉽사리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용생의 어설픈 성장드라마][음악인의 고달픈 성공스토리]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가져가지 못할 바엔 하나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15년도 작품은 16년도보다 제법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놀라운 반전을 갖고 있다.

바로 주옥같은 음악이다. 20여 곡이 넘는 올드팝은 나올 때마다 가슴을 설레게 했다.

신나고 익숙한 음악들, 그 음악에 어울리는 화려한 조명과 배경, 다양한 무대효과와 전환은 극장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효과를 아낌없이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50년대 세트와 소품, 의상들은 마치 현실처럼 생생한 감정을 전해준다. 음악극답게 위에 열거한 문제점들을 아름다운 음악들이 사르르 덮어주는 것이다. 다 잊고 즐겨보자는 듯이. 나는 음악과 배우들의 춤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보러 갈 것이다. 그만큼 이 공연의 매력은 음악에 있다.

 

어설픈 슬로우모션의 엔딩장면은 물론 노인의 기억 때문이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어색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작과 같이 노인의 회상이 현실로 돌아오면서 기억 속 인물들이 올라선 무대가 안쪽으로 점점 멀어지는 효과와 뒤돌아보며 너무나 달라진 현재를 보며 입을 다무는 용생 할아버지는 아주 인상 깊은 연출이었다.

 

당신의 아름다운 시절은 어찌됐든 결국 이 극의 주요 키워드는 부평, 미군부대, 음악이다.

음악은 갖춰진 듯 하다. 인물들의 색깔과 목표만 분명하게 전달된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훌륭한 음악극으로서의 희망도 걸어볼 만 하다.

 

참고할 만한 영화 : 고고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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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5 . 21

비가 오는 날이었다. 400석 규모의 복사골 아트홀 입구에는 부천 CSK 안내요원 여럿이 배치되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력이 있었고 방명록을 남겨 달라는 친절한 멘트와 프로그램을 나눠주는 모습은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예상대로 정시가 되었는데도 관객은 30명 남짓 차게 되었으며 대다수는 출연진의 친분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홍보에 대한 실망감이 커질 무렵 대표자인 곽충신 연출가가 비로 인해 공연 시간을 좀 더 지연하겠다며 직접 나와 멘트를 했다. 최근에 한 마디 말도 없이 공연시간을 사정상 늦추는 공연단체들에 비해 이런 점은 솔직함으로 보였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15분 지연에도 불구 관객은 40명을 채 넘지 못하고 시작하였다. 400석 공연에 40명 관람. 이것을 관객들의 상실된 문화 행동이라고 봐야 할지, 홍보력 부족한 단체의 문제로 돌려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그렇게 텅 빈 객석을 놓고 공연은 시작됐다.

 



공연은 시작부터 삐그덕 댔다. 큰 문제는 바로 공연의 중심인 연기력이었다. 특히 공연의 중심인 여주인공의 연기는 연기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여배우를 비롯, 그 후 나오는 조, 단역들 모두의 연기 실력이 동아리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암전 때 세트 이동시 많은 인원들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작업등을 켜서 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세트를 끌고 등퇴장하여 큰 소음이 암전 때마다 났고 등을 돌려 연기한다거나, 말이 안 맞는 대사들, 형편 없는 실력의 악기 연주를 오랜 시간 보여준다던가, 등퇴장길이 다르며(왼쪽 문으로 등장하여 오른쪽 소대로 들어가 버린다) 독백형식의 대사들, 이전의 세트들이 다음 장면에서 미처 빼지 못해 그대로 있고 119 대원은 의사로 나오며 심지어 119를 부를 때 위치를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고 찾아오는 이상한 일 등 실소가 나오는 장면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른을 존중하자면서 학생들은 모두 의자에 앉고 수업을 들으러 온 할머니는 혼자 세워두는 장면이며 위독한 사람이라면서 의사가 어깨 부축을 하며 데리고 들어오는 장면 등은 더 이상 실소를 떠나 공연 완성도에 대한 화가 나기 시작했으며 관객으로서 모독 받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게다가 후반부에는 마치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은 묘사며(정확히 하나님이라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음), 기독교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비종교인들에게 부담스러움을 준 게 사실이다. 이는 사전 공지나 팜플렛 등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사항이며 그 묵인은 대중성을 배제해버린 행위이다. 더욱이 이 공연은 R석 40,000원이라고 버젓이 팜플렛과 포스터에 써 놓은 작품이다. 더군다나 이 공연이 초연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냉정히 말해서 연출의 의도와 부천 CSK의 실력에 의심이 가며 과연 사업의 순수한 의도와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에 대해 큰 허무함을 느꼈다. 나의 생각과 비교하기 위해 다른 관객들을 둘러보니 대개는 자고 있었고 아이들은 2시간의 러닝타임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자고 조르고 있었다.

 



나중에야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종교단체집단이며, 청소년 센터의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동아리 성향이 강한 단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성극이라는 것도, 동아리 수준 단체라는 것도 모르고 단순히 뮤지컬로만 생각하고 4만원을 내고 찾아온 관객으로서는 충분히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무료도 아니고 새로움도, 유익함도 없는 자기 단체의 자축 파티에 무려 4만원의 거금을 내고  2시간동안 듣기 싫은 자기 자랑을 꼼짝없이 들은 것 같았다. 과연 이들은 이 공연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까? 그 성공의 기쁨은 관객이 아니라 본인들 아닐까.
 
때때로 연출가들이 망각하는 사실이 있다.
자신이 본 세상과 관객들이 보고 싶은 세상은 아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확실한 예가 바로 이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성취감에 휩싸인 연출 및 출연진들에 비해 
나, 그리고 함께 간 친구의 허망한 표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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